Kosovokids

1983년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 부부의 초청으로 미국에 가 심장병 수술을
받았던 이길우씨가 24일 서울 저동 인제백병원 병실에서 자신의 도움으로
심장병 수술을 받은 코소보 어린이들을 안아주고 있다.
| 홍도은 기자 hongdo@kyunghyang.com

ㆍ4살 때 대통령기 타고 미국 가 심장병 수술 받고 현지 입양

ㆍ코소보 어린이 등 데려와 수술… “한국도 자선문화 정착 기대”

국제구호단체 ‘생명의 선물(Gift of Life)’ 소속 재미동포 이길우씨(미국명 브레트 하버슨·33)는 24일 서울 저동 인제백병원 919호 병실에 들어서자마자 환하게 웃었다. 그의 도움으로 심장병 수술을 받아 생명을 구한 유럽의 소국 코소보 어린이 오멜(4)과 리네사(10)가 그를 반갑게 맞았다. 알바니아어를 쓰는 코소보 어린이들과 영어를 쓰는 이씨는 말은 통하지 않았지만 손을 꼭 잡았다. 이씨는 “오멜처럼 4~5살 난 남자아이 환자들을 보면 꼭 내 자신을 보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도 4살이던 1983년 심장병 수술을 받기 위해 한국에서 미국으로 건너갔다.

이씨는 태어날 때부터 심장병을 앓았다. 그러나 그의 가족은 그를 치료할 돈이 없었다. 당시 이씨처럼 ‘생명의 선물’을 통해 심장수술을 기다리는 아이는 600여명이나 됐다. ‘생명의 선물’은 1983년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 부부가 한국을 방문 중이라는 사실을 알고 백악관에 도움을 요청했다. 레이건 전 대통령의 부인 낸시 여사는 심장병을 앓는 한국 어린이 2명을 미국으로 데려가기로 했다. 당시 이씨와 안지숙씨(당시 7세)가 미 대통령 전용기 에어포스원을 타고 미국으로 건너가 심장수술을 받았다.

이씨는 수술 후 미국 가정에 입양됐다. 그는 이후 과거를 잊고 살았다. 학창시절 친부모가 누구인지 궁금하기도 했지만 어디서 찾아야 할지 방법을 몰랐다. 1998년부터 양아버지가 운영하는 회사, 은행, 보험회사에서 일하며 평범한 미국인의 삶을 살았다.

이씨의 삶이 완전히 달라진 계기는 2004년에 있었다. 이씨는 “당시 뉴스에서 레이건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을 보고 나의 과거를 다시 떠올리게 됐다”며 “운이 좋았고 축복받았던 내 과거에 대해 알고 싶은 강한 충동에 휩싸였다”고 말했다.

그는 레이건 기념관 측에 낸시 여사를 만나고 싶다는 e메일을 보냈다. 2007년 10월 레이건 기념관 행사에 초청돼 24년 전 자신을 미국으로 데리고 온 낸시 여사를 다시 만났다. 그는 그때 처음 자신이 ‘생명의 선물’이란 기구를 통해 새 생명을 얻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는 “어린 시절 사진이 전혀 없는데 당시 기념관에는 내 키보다 더 큰 크기의 나의 어릴 적 사진들이 있었다”며 “내 과거를 제대로 알게 되면서 다른 사람을 도우며 사는 것이 나의 운명이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이씨는 그해 말 다니던 보험회사를 그만두고 ‘생명의 선물’ 소속 자원봉사자가 돼 한국에 왔다. 뉴스에서 그를 본 친이모가 연락을 해왔고 자신의 뿌리에 대해 알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20여년 만에 한국에 온 그는 발전된 모국의 모습에 크게 놀랐다. 심장병 수술을 할 수 없어 자신을 미국으로 보내야 했던 과거의 한국은 이제 다른 나라 환자들을 데려와 수술해줄 수 있을 만큼 발전돼 있었다.

이씨는 현재 한국에 거주하며 심장병 수술을 할 수 없는 열악한 국가의 어린이들에게 한국, 미국, 유럽 등 선진 의료기술을 갖춘 나라의 병원·의사를 소개하고 치료받도록 하는 일을 하고 있다. 의사들이 수술을 승낙하면 ‘생명의 선물’에서 비용을 부담해 심장병 어린이들을 해당 국가에 보내 치료한다. 현재 회복 중인 오멜과 리네사 외에도 그의 도움으로 코소보 어린이 2명이 지난달 가천대 길병원에서 성공적으로 수술을 받고 자국으로 돌아갔다. 세르비아와의 독립 분쟁 탓에 최근까지 내전을 겪은 코소보는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는 인터뷰 도중 “코소보 어린이들의 수술을 응해준 한국의 병원과 의사들에게 감사한다”며 “다른 나라 어린이들을 한국으로 데려와 수술해줄 때 한국에 대해 강한 자부심을 느낀다”고 몇 번이나 말했다. 그는 또 “한국 사람들은 친절하고 적극적으로 남을 돕는 성품을 가졌다는 것을 느꼈다”며 “한국도 언젠가 미국처럼 남을 돕는 자선문화가 정착될 것이라 믿는다”고 말했다. 이씨는 자신의 기적 같은 삶과 자신을 돕고, 자신이 도운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책으로 쓰고 있다.

<박순봉 기자 gabgu@kyunghyang.com>